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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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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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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 중에서도 최고 사냥꾼인 호랑이의 습성을 연구하다 보면 육군의 전투력 강화와 접목해 볼 부분들이 많아요. 우선 호랑이는 위장술에 능하고 민첩해서 상대를 공격할 땐 틈을 주지 않고 순식간에 공격해 제압하죠. 또 바람 방향으로 냄새를 맡아 먹잇감의 소재를 파악하며 일절 소리를 내지 않은 채 맞바람을 치고 다가가 공격을 합니다.
그리고 호랑이는 용맹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한번 포효하면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리지요. 보통 3m를 훌쩍 넘는 거대한 몸집에 앞발로 후려칠 때 파워가 1톤을 능가합니다. 황소의 두개골을 박살내고 목뼈를 꺾어버릴 정도여서 누구도 나를 당할 수 없다는 자신감을 지니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좀처럼 자기 모습을 안 보이는 게 호랑이의 특색입니다. 겸손하면서 한편으론 그만큼 보안에 철저하다는 얘기지요. 왜 힘깨나 쓰고 좀 잘 났다싶으면 우쭐대거나 으스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진정한 고수는 없는 듯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진면목을 보여주지요. 우리 육군이 이렇듯 위풍당당한 호랑이의 정신으로 나아가면 두려울 게 무엇이겠습니까.” 김동하 (취재부장)
호랑이는 있는데, 호랑이 전문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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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봄비가 오시려나. 촉촉하고 흐린 기운을 안고 고불고불 산길을 오른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적한 산자락 아래 외딴 집 한 채 찾아가는 길. 노란색으로 큼지막하게 페인팅 해놓은 호랑이 발자국을 보노라니 기자의 입가에 웃음꽃이 번진다. 전철역에서 기자와 만나 함께 산길을 걷고 있는 이 사람은, 17년째 한국 호랑이 ‘고려범’의 발자국을 좇
고 있는 임순남(56세, 한국호랑이보호협회 소장) 씨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독수리가 미국을, 곰이 러시아를 상징하듯 말입니다. 한반도에서 호랑이, 표범과 같은 대형 야생동물의 씨가 마른 건 ‘해로운 짐승 제거’를 명분으로 자행된 일제의 마구잡이식 사냥 때문입니다.”
1910년 강제로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창씨개명과 한글사용 금지 등으로 대표되는 민족말살정책을 폈다. 우리 민족정신의 근간을 뒤흔듦으로써 통치와 수탈을 원활하게 하고자 한 것. 그들은 같은 맥락으로 백두대간에 철심을 박아 국토의 맥을 갈가리 찢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은밀하고 거세게 항거하는 독립운동가들에 기가 질린 일제는 결국 우리 민간신앙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호랑이에 주목했다. 독립을 위해 저토록 끈질긴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정신적 바탕이 조선인들이 ‘산신’으로 예우하며 신령스럽게 여기는 호랑이의 정기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에 일제는 ‘정호군’이라는 호랑이 토벌대를 만들어 한반도 전역에서 호랑이 죽이기 작전을 펼쳤다.
1915년부터 1942년까지 정호군에 죽임을 당한 한국 호랑이 수만 해도 공식적으로 97마리. 같은 기간 표범 624마리, 곰 1,039마리, 늑대 1,396마리도 도륙됐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후 우리 민족의 상징이었던 고려범은 북한에서는 조선범, 중국에서는 동북호, 러시아에서는 아무르 호랑이 등으로 불리게 됐다. 임 소장은 이와 같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지난 2004년부터 매년 3.1절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여오고 있다.
호랑이를 다시금 우리 민족의 정신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임 소장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군용 천막과 취재용 차량들, 카메라 및 각종 촬영장비들로 꽉 찬 컨테이너 등이 어우러져 흡사 야전캠프를 연상케 하는 그의 타이거 캠프가 모습을 드러낸다.
남한에 아직 호랑이가 생존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임순남 소장. 그는 어떻게 ‘호랑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어오게 된 걸까.
1980년 봄, 군에서 제대한 후 자연 다큐멘터리 촬영기사로 문화공보부와 방송사 등지에서 일하던 그는 199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시베리아 호랑이 촬영을 가게 된다. 그런데 워낙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영물인지라 그 지역에 300여 마리가 살고 있다는 호랑이를 카메라에 담기란 쉽지 않았다.
헬기를 타고 열흘을 돌아다녀도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해 현지에 있는 호랑이 박사에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헬기로는 찾을 수 없다며 길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를 따라나선 길에서 야생 호랑이와 조우하는 희열을 만끽하며 그대로 거기 눌러앉아 내리 4년 동안 호랑이 발자국 조사법을 연구했다. 표범, 스라소니, 멧돼지, 살쾡이 발자국 구별법도 배웠다.
누구 하나 관심도 가져주지 않고,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일.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임 소장은 자신이라도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사명감을 부여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돌아와 호랑이 조사에 몰두하던 임 소장은 1998년 평화의 댐 인근에서 9.5cm의 대형 암컷 호랑이 발자국을 직접 확인하게 된다.
“요즘 러시아 아무르, 중국 훈춘지역 등에 호랑이가 살고 있는데 사실 이곳은 고려와 발해 때 우리 영토잖아요. 그래서 저는 세계호랑이학회에 발표할 때 우리 호랑이를 동북호라든가 백두산 호랑이라고 하지 않고 ‘고려범’이라고 표현합니다. 국민들 대다수는 남한에서 호랑이가 멸종되었다고 배워 왔고, 또 그렇게들 알고 있지만 그렇게 된 원인은 우리나라에 호랑이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만두자, 그만두자…
흔들릴 때마다 나를 끌어주는 영물
지난 17년간 임 소장은 그야말로 ‘애타게’ 고려범을 찾아 헤매었다. 호랑이의 흔적을 좇고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전 국토는 물론 동토 시베리아를 수없이 오가는 통에 하던 일도 접어야 했고, 재산도 거의 탕진했다. 남편의 ‘특별한 삶’을 받아들이고 대신 가계를 책임져준 아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아무려나 그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 되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제가 돈 벌려고 작정하면 얼마든지 벌 수 있어요. 근데 호랑이 연구한다는 사람이 영리적인 활동하면 행여 호랑이한테 누가 될까봐 못해요. 그동안 있는 재산 다 쓰고 집까지 작은 데로 옮겨오면서 이제 정말 그만해야지, 싶었던 적이 없었겠어요? 호랑이는 영물이라 좋은 일 하려는 사람은 도와준다는데 내가 저의 존재를 알리려고 그렇게 온 산을 헤매고 다니며 여름엔 땀범벅이 되고, 겨울엔 눈밭을 뒹굴며 고생하는데 어떻게 호랑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편하게 지내면서 자기 챙길 거 다 챙기나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그래 이제 호랑이는 잊고 가족들과 살아야지, 결심하고 계곡에서 몸을 씻고 내려오는데 핸드폰이 울리는 거예요. 중국에서 세계호랑이학회가 열리는데 호랑이 연구에 권위 있는 학자들이 입을 모아 내가 꼭 와서 그동안 조사한 걸 발표해 주면 좋겠다고요. 그러면 아, 내가 헛산 건 아니었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도 들고 조금 더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발동합니다.
그렇게 또 5년, 10년이 가고 그러는 사이 여기서 봤다, 저기서 봤다 해서 달려가 보면 호랑이 발자국이 다 맞고… 내가 정말 힘들 때면 호랑이가 뭔가 신호를 보내오는 거예요. 그러니 못 그만 둘 밖에요.”
임 소장은 호랑이의 습성에 관한 새로운 사실(세계호랑이학회 보고된 ‘호랑이는 나무에 3m밖에 못 올라간다.’는 그 학설을 뒤집고 10m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촬영해 증명)과 직접 찍은 호랑이 생존흔적, 발자국 사진을 토대로 호랑이 연구에 관한 한 그간 최고를 자부하던 러시아 학자들 및 세계 유수의 호랑이학회 관계자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그리고 동북아 호랑이의 원조는 바로 ‘고려범’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임소장의 발표를 토대로 한국에 와서 조사한 후 돌아가 ‘한국에 호랑이가 있다’고 현지 신문에 기사화했다.
임 소장은 이제 해외에서는 ‘타이거 림’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호랑이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호랑이학회에 한국 대표로 초청되는가 하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다큐채널인 내셔널지오그래픽 및 BBC 등 유명 해외 방송사와 호랑이 관련 다큐멘터리도 수차례 촬영했다. 게다가 호랑이의 흔적을 좇는 자신이 소재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가 캐나다 유수 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DMZ에 울려 퍼질 고려범의 포효를 기다리며…
임 소장은 백두대간과 비무장지역 등지에 고려범이 적어도 10마리 정도는 살아 있을 걸로 확신하고 있다. “1998년 2월 말경 눈밭을 따라 나 있는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했고, 6월엔 강가에서 새끼 발자국을 확인했습니다. 호랑이는 한 번에 새끼를 두 마리 정도 낳으니까 암수 합쳐 적어도 네 마리가 살고 있다는 증거였죠. 같은 해에 부산 기장에서도 새끼 발자국이 나왔는데 새끼가 혼자 거기까지 이동을 못 해요. 그러니까 또 네댓 마리가 더 살아 있다는 추측이 나오지요.”
그럼 호랑이가 있다면 도대체, 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느냐는 물음에 임 소장은 호랑이의 예민한 습성으로 답한다. “호랑이는 청각이 예민해서 3km 떨어진 거리에서 나는 소리를 다 듣고 몸을 숨겨요. 웬만해선 촬영하기가 쉽지 않죠. 호랑이 30마리가 산다는 중국 훈춘에서도 카메라 150대를 장치하고 사람 150명을 동원해 2년 만에 겨우 한 마리를 찍었을 정도니까요.”
경인년, 백호의 해를 맞은 임 소장의 행보가 분주하다. 그는 올해 진작부터 마음에 품어온 몇 가지 계획들을 진행시키려 한다. 먼저 그동안 국내에서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국제호랑이학회를 유치할 생각이다. 호랑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이고 학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또한 타이거클럽의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내외적 요인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 민족 고유의 호랑이 정신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심어줘 민족적 긍지와 자존심을 고취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한편 연천군청과 함께 대광리 고대산 일대에 호랑이보호구역을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해 8월 한국호랑이보호협회의 제안에 연천군이 호응하면서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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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발해 땅에서 살고 있는 고려범의 후손들을 국내에 들여와 종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백호를 기차에 태우고, 우리 미술가 및 전 세계 예술가들이 참여해 백호가 탄 기차를 흰 문양으로 감쌀 겁니다. 북한을 통해 육로로 고려범이 제 살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퍼포먼스이지요.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 그 상징인 DMZ에 세계적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는 호랑이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될 것입니다. 올해 6월에는 유엔본부에서 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병관 작가의 ‘서부-동부전선 DMZ 사진전’도 열릴 예정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곁에서 잊혀져 가던 한국 호랑이, 그 용맹과 겸손의 흔적을 좇아 민족정기를 되살리고자 17년을 애써 온 임순남 소장. 짙은 눈썹 사이로 드러나는 흰 눈썹과 부릅뜬 두 눈이 어느 결에 호랑이를 참 많이 닮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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