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기사[Text]

보도기사[Text] 2018-05-03T13:22:59+00:00

호랑이처럼 호랑이 찾는 남자 임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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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11:4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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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피플]


호랑이처럼 호랑이 찾는 남자 임순남

산군(山君)이닷! 포효소리가 온산을 울린다. 접시같이 퍼런 눈이 번뜩인다. 모든 짐승과 산천초목이 버쩍 얼어버린다. 날랜 허리로 숲을 헤치고, 힘센 다리로 바위 위를 뛰쳐오른다. 잡스럽고 악한 것들은 깨끗이 쓸어버리지만, 약하고 설움받는 이는 돕는다. 용맹스럽고 강맹하지만 자애롭고 고고한 영물(靈物).


산신으로 추앙받으며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경외의 대상으로 살아숨쉬던 범. 범의 기상을 내려받아 우리 민족은 그토록 강인하고도 의로웠나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호랑이는 우리 곁에서 사라져갔다. 사람들은 점점 초라하고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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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생호랑이·표범 보호보존연구소(www.koreantiger.com) 임순남 소장(48). 남한 땅에서 호랑이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국의 험한 산을 누비고 있는, 호랑이에 미친 사나이다. 호랑이나 그 발자국을 봤다는 목격자만 나오면 천리길을 멀다 하지 않고 달려간다. 동물학자도 아니고,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다. 자연다큐멘터리 촬영기사로 일하다 호랑이에 빠져버렸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많았던 그 호랑이가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지요. 일제가 조직적으로 사냥을 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일제는 당시 야마모토라는 인물을 앞세운 대규모 정호군(征虎軍)을 동원해 140마리가 넘는 호랑이를 잡아 죽였습니다. 내세운 명목은 맹수구제였지만 기실 민족정신 말살이 목적이었지요. 호랑이는 민간신앙의 숭배대상이었으니, 조선 사람들은 그 기상을 숭상했고 이어받았던 겁니다. 일본인들은 그뒤 ‘한국에는 호랑이가 없다’고 우리에게 세뇌를 시켜버렸습니다. 그 잔재는 해방 뒤에도 우리 머릿속에 남아서 우리 스스로 찾아보지도 않고 호랑이가 없다고 부정해버리게 된 비극이 생겨난 겁니다”

분명히 호랑이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호랑이를 찾아내는 일은 우리 가슴속에서 사라져버린 범의 기상을 살려내는 일이었다. 호랑이는 단순히 희귀동물이 아니라 민족혼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 등 외국의 호랑이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국내 탐사에 나선 것은 98년부터였다. 1년 중 3분의 1은 산속에서 지냈다. 눈이 키만큼 쌓이고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도 텐트를 치고 범을 기다렸다. 그해 평화의 댐 근처에서 범의 발자국을 찾아내 한국에 호랑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뒤에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발자국과 흔적들을 찾아냈다. 목격자도 여럿이었고, 한번에 4명이 동시에 호랑이를 봤다는 경우도 있었다.

러시아 극동지리학 연구소장 피크노프 박사 등 세계 최고의 호랑이 전문가들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그의 일에 관심을 표했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동행 탐사를 벌인 끝에 그들이 내린 한결같은 결론은 “한국에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각종 국제학회나 회의에서도 남한에 호랑이가 산다는 그의 주장은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국내 학계에서만은 배척을 당했다. 그가 찾아낸 흔적들은 호랑이가 아닌 다른 고양이과 동물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싸우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는 학계 이야기만 나오면 격앙된다. “언제 제대로 된 실태조사 한번 벌인 적이 있습니까? 어디 산에 가서 호랑이 한번 찾아다녀본 동물학자가 있습니까? 전부 히터와 에어컨 나오는 연구실 책상에서만 범은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지요.” 그는 “호랑이가 없다는 자신들의 기존 주장을 뒤집을 수가 없어 학계에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환경부조차 기존의 입장에서 슬그머니 한발 물러서 “그동안 체계적인 실태조사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 범이 없다고 공언한 적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임소장이 몇 년 간을 발로 뛰어 수집한 증거들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계에서는 그를 이단아 취급하고 있다.

호랑이가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는 결국 호랑이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 호랑이의 모습을 잡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워낙에 영리하고 은밀히 행동하는 동물이라 좀처럼 사람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예산과 최소한 4명 이상의 인원이 교대로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을 지켜야 한번 볼 수 있을까 말까다. 그러나 현재 이 일을 하는 것은 임소장 혼자다. 뜻 맞는 이들이 있으나 이 일에 매달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호랑이를 찾을 날이 올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호랑이가 돌아오면 사라졌던 우리 민족혼도 서서히 살아날 것입니다. 일생을 걸더라도, 내 한 몸이 스러지더라도 아깝지 않은 일이지요.”

오랫동안 범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 역시 호랑이를 닮아 있다. 강인하면서도 고독한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범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숨어 그를 지켜보고 있을 친구를 찾아 그는 깊은 산속을 헤매고 다닌다. 그는 소리높여 외친다. ‘범은 살아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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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10마리 이상 서식”-

◇임소장의 ‘고려범 연구’

고려범. 임소장은 한국호랑이를 ‘고려범’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에서는 동북호, 러시아에서는 시베리아 아무르 호랑이, 북한에서는 조선범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맞서 그가 만들어낸 이름이다. 실제로 2차 대전 뒤 구소련에서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고려티그르라 부르기도 했다 한다. 시베리아 호랑이든, 동북호든 모두 고려범과 같은 말이다.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연해주, 만주의 호랑이 모두가 고려범과 형제들이다.

임소장은 국내에만 최소한 10마리 이상의 고려범이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그가 조사하고 발견한 흔적들과 목격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이 수치가 확실하다는 것. 적성, 연천, 화천, 설악산, 홍천, 원주, 소백산, 경주, 지리산, 기장 등이 그가 꼽는 서식추정지다.

국내에서 기록으로 남아있는 마지막 호랑이는 1929년 경주 대덕산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가 그후 수십년간 사람들에게 한번도 사살당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면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났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임소장은 “호랑이는 먹이가 부족하면 새끼를 제거해 개체수를 스스로 조절한다”며 “호랑이 수가 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한 내 호랑이는 수가 많지 않아 근친교배의 위험이 있다”며 “DMZ 내 일부구간에 이동통로를 만들어 호랑이가 남북을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 이호승기자 jbravo@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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